한국에서 살 때는 모래폭풍이라는 걸 뉴스에서만 봤다. 사하라 사막이나 중동 어딘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바이에 살게 되면서 그게 내 일이 됐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하늘이 이상했다. 평소의 맑고 파란 두바이 하늘이 아니었다. 뭔가 뿌옇고, 주황빛이 돌았다. 그냥 먼지가 좀 많은 날인가 싶었다. 별생각 없이 평소처럼 걸어서 출근하려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문을 여는 순간 모래가 얼굴로 그대로 날아들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직장이 멀지 않으니까 걸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냥 걷기 시작했다.

10미터도 채 못 갔을 때였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차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순간 바로 옆에서 경적이 울렸고, 흰색 SUV 한 대가 내 팔을 스칠 듯이 지나갔다. 운전자도 나를 못 봤고, 나도 차를 못 봤다. 그때 처음으로 '이거 진짜 위험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타이밍이 달랐어도 사고가 났을 수 있었다.
겨우 직장에 도착했더니 동료들이 난리가 났다. 걸어왔냐고. 다들 택시를 타고 왔다고. 모래폭풍 날에 걸어 다니는 건 현지에서는 상식 밖의 일이었다. 나만 몰랐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두바이에서 하늘 색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문을 열기 전에 먼저 멈추는 습관이 생겼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 이걸 하붑(Haboob)이라고 부른다
나중에 찾아보니 중동 지역에서는 강한 모래·먼지 폭풍을 하붑(Haboob)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강한 바람이 사막의 모래를 끌어올려 도시 전체를 뒤덮는 현상이다.
처음에는 그냥 먼지가 많은 날인 줄 알았는데, 현지에서는 꽤 위험한 기상 현상으로 취급한다. 실제로 강한 모래폭풍이 발생하면 가시거리가 크게 떨어지고 항공편 운항이나 도로 교통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내가 겪은 날도 하늘이 주황빛으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심한 날에는 항공편 지연이나 학교 휴교가 발생하기도 한다. 두바이 도로교통청(RTA)은 하붑 발생 시 속도 제한을 낮추고 주의 경보를 발령하며, 차를 타더라도 속도를 대폭 줄이고 비상등을 켜고 운전하도록 안내한다.
진짜 힘들었던 건 그 다음이었다 — 3일 동안 몸에서 모래가 나왔다
모래폭풍이 무섭다고 하면 사람들은 폭풍이 지나가면 끝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짜 고통은 그 이후에 시작됐다.
그날 저녁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바로 샤워를 했다. 머리를 감는데 욕조 바닥에 모래가 깔렸다. 당연하다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또 머리를 감았는데 또 모래가 나왔다. 귀를 면봉으로 닦는데 모래가 묻어 나왔다. 코를 풀 때마다 모래가 섞여 나왔다.
이틀째도 나왔다. 셋째 날도 나왔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사이에 모래가 박혀 있었고, 귀 안쪽 깊은 곳에도 들어가 있었다. 아무리 감아도 한 번에 다 나오지 않았다. 3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몸 상태도 며칠째 좋지 않았다. 눈이 뻑뻑해서 렌즈를 낄 수가 없었다. 양쪽 눈이 충혈됐고 눈꺼풀이 무거웠다. 코가 막히고 목도 따끔거렸다. 피부도 거칠어지고 건조해졌다.
두바이에 오래 산 사람들 중에는 하붑 이후 눈 자극이나 호흡기 불편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 비로소 이해했다.
집 안도 문제였다. 창문을 다 닫고 있었는데도 창틀에 모래가 쌓여 있었고, 가구 위에도 얇게 모래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두바이에 오래 산 사람들이 하붑 이후에 마스크를 쓰고 집 전체를 한 번 닦는 게 루틴이라고 했다. 그게 왜인지 그날 이후로 완전히 이해했다. 사막 한가운데 도시가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때 처음으로 몸으로 이해했다.
그 뒤로 생긴 나만의 모래폭풍 대처법
한 번 그 경험을 하고 나서는 행동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일을 겪은 뒤로는 NCM 기상 앱 알림을 켜두고 살았다. 경보가 뜨는 날은 현지인들도 웬만하면 밖에 안 나간다. 나도 그 이후로는 경보가 뜨면 이동 계획부터 바꿨다. 아무리 급한 약속이 있어도 경보가 뜬 날은 일정을 미루거나 재택으로 전환하는 것이 기본이 됐다.
하붑이 예상되는 날 아침에는 하늘 색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평소보다 탁하고 주황빛이 돌기 시작하면 바로 앱을 열었다. 차가 없는 날이라면 미리 택시를 예약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하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택시도 잡기 어렵고, 앱 차량도 수요가 폭증해서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
그 뒤로는 이것만은 꼭 챙겼다.
- KF94 마스크
- 선글라스
- 인공눈물
처음에는 유난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 모래폭풍을 겪고 나니 왜 다들 챙기는지 알겠더라. KF94는 일반적인 얇은 마스크보다 미세한 모래를 막는 데 도움이 됐다. 선글라스는 렌즈 면적이 큰 것으로 바꿨다. 인공눈물은 외출 후 바로 쓰는 습관이 생겼고, 하붑 예보가 있는 날은 렌즈 대신 안경으로 바꿔 쓰는 편이 낫다.
두바이 처음 가는 사람에게
처음 두바이에 갔을 때는 모래폭풍을 영화 속 장면 정도로 생각했다. 뉴스에서 보던 극적인 장면, 관광객이 한 번쯤 신기하게 볼 수 있는 풍경 정도로.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관광객이 구경하는 풍경이 아니라 실제로 위험한 기상 현상이었다.
현지 사람들이 경보가 뜨면 움직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택시를 타면 나도 타면 되고, 그들이 마스크를 쓰면 나도 쓰면 된다. 그 단순한 규칙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그 아찔한 날은 없었을 것이다.
두바이로 여행을 가거나 거주하게 된다면, 경보가 떴을 때 즉시 실내로 이동하는 것이 기본이다. 차 안에 있다면 속도를 줄이고 비상등을 켠 채 대기하는 것이 안전하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걸어 나갔다가는 예상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두바이는 익숙해지면 정말 살기 좋은 도시다. 다만 모래폭풍만큼은 현지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 게 가장 안전하다.
참고 자료
- UAE National Centre of Meteorology (NCM)
- Dubai Roads and Transport Authority (RTA)
'라이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독일 분리수거 완전 정리 — Bio 쓰레기와 판트 시스템 차이일 분리수거 완전 정리 — Bio 쓰레기와 판트 시스템 차이 (0) | 2026.04.16 |
|---|---|
| 두바이에서는 괜찮았는데 샤자에서는 제지당했다 — UAE 복장 규정의 현실 (0) | 2026.04.14 |
| 전기세 폭탄 맞고 충격받은 날—에어컨을 켜둔 채 여행을 떠난 이야기 (0) | 2026.04.11 |
| 개미는 어디든 올라간다 — 친구네 과자와 중국 개미 퇴치 이야기 (0) | 2026.04.11 |
| 중국에서 처음 본 초대형 바퀴벌레, 퇴치하며 알게 된 진짜 해결법 (0) | 2026.04.10 |